제2회 제2회 계절발표회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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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회 계절발표회 현장 스케치
2018년 12월 14일 금요일 안양본원 3층
계절은 어느덧 하얀 눈요정(雪女)의 계절입니다.
도량 마당은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입니다.
황토 담장 기와에도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입니다.
돌의자 위에도 눈 손님이 앉았습니다.
내리는 눈에 아랑곳않고 탑돌이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자동차 소리도 내리는 눈소리가 감춰버리니 마치 깊은 산사에 온 듯 합니다.
내일의 계절발표회를 축하하는 눈요정(雪女)의 선물이 도량에 가득합니다.
다음날인 14일 3층 법당에서는 제 2 회 계절발표회가 열립니다.
식순 1
식순 2
식순 3
이평래 대행선연구원장님의 인사말씀입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삽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관한 공부를 꾸준하게 하고 있고, 마음을 철학적 종교적으로 심화시켜서... 분야분야로 교수님들을 초청해서 학술발표회가 진행됩니다.”
이사장 혜수스님의 환영사입니다.
“학술대회의 논문 발표가 낯설고 거리감이 있었는데, 대행선연구원에서 두 번의 학술대회와 두 번의 계절발표회를 함으로써 논문도 가깝게 느껴지고 외부에서 오시는 교수님들도 친근감이 생깁니다... 두 분 교수님과 논평자들이 논문을 쓰고 논평을 하면서 저희 스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마음에 와닿았을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학문적이 아닌 마음으로 가슴에 와닿아서 여러분의 생활에, 마음속에 남았으면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발표하신 공덕으로 여러분의 앞날에 부처님의 큰 가피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늘 이렇게 자리를 메워주시는 청중 점수 100점인 우리 신도분들 감사합니다.”
첫 발표는 김응철 중앙승가대학교 교수님의 ‘대행선 사상의 문화치유명상 응용방안 연구’입니다.
좌장은 고려대 김영래교수님, 논평은 금강대 심준보 교수님과 동국대 문진건 교수님입니다.
김응철 교수 : “현재까지 제시된 대행선 관련 연구의 상당부분은 사상(思想)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연구방식에만 국한될 경우 대행선의 연구는 이론적 측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실천적 측면을 간과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대행선이 생활선으로 실천되고 공감과 치유가 있는 대중적인 수행법으로 자리 잡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하였다. 대행선의 관법을 문화, 치유, 그리고 명상이라는 세 가지 주제와 연계시켜 보았다.
대행선을 문화와 연계시키는 것은 공감과 대중성 확보를 위해 유용하기 때문이며, 치유는 일상에서 직면하는 괴로움을 벗어나고 스트레스를 완화시킴으로서 건강성을 회복하는데 활용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명상법으로는 사념처의 관법을 활용함으로서 대행선의 관법과 연계시켰다.”
김영래 교수 : “발표자께서 많은 연구를 하시고 제안을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논문을 쓰신 것 같다... 오공에 대해서도 각각의 카테고리에 대응하는 명상법을 제시하고 있다. 한마음 공부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게 딱딱 이렇게 배대가 될 수 있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심준보 교수 : “이 논문의 장점은 무엇보다 표로 만들 수도 있을 정도인 형식적 체계성에 있다.. 두 번째 장점으로는 다양한 명상프로그램을 제시한 실천적 실용성이다. ..
그러나 이 논문은 문제점도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주인공 관찰이 주체적 치유와 연결되고 주체적 치유는 주인공을 관찰하는 관찰명상과 연결되고 하는 데, 이것이 어떤 논리적 맥락, 교리적 맥락 속에서 연결되는가?
한마음 체득을 통해서 화합적 치유가 일어난다고 하는데, 도대체 화합적 치유라는 것은 무엇인가? 또 한마음을 체득하는 일심명상이라고 하는데 일심명상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구체적인 해설은 논문에서 부족하지 않았는가?
이런 교학적, 교리적인 좀 더 깊은 고찰들이 있고 난 후에 대행선을 하나의 실용적, 실천적 프로그램으로 만들 때 이론적 틀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이 논문의 장점과 단점을 생각한다.”
심준보 교수 : “부처님께서 초전법륜에서 오비구를 깨닫게 할 때, 법문으로 깨닫게 했지, 위빠사나라던지 사념처 자비관 이런 걸로 깨닫게 한 게 아니다. 대행 큰스님서도 사념처 이런 것 가르치셨나? 오로지 법문만 하신 것 아닌가?...
불교의 본질은 깨달음에 있고 수행은 방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대행스님께서 주인공과 한마음을 강조하신 것은 깨달음을 강조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는 서구의 심리학을 이용한 다양한 명상프로그램 개발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불교의 본질은 뭐냐? 핵심은 깨달음에 있다는 거다. 한마음의 자각, 주인공을 체험하는 데 있다.”
심준보 교수 : “대학 때 대행 큰스님을 친견했다. 지금도 존경하는 마음이 늘 있다. 저는 대행 큰스님을 두 개의 관점에서 본다. 하나는 철저한 선사였다. 하나는 선사를 초월한 대승보살이었다 하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
일체 다른 구체적인 방편보다 직지인심을 가장 기본으로 하셨던 대행 큰스님은 철저한 본분선사였다... 또 한 가지 대행 큰스님을 전통 선사들보다 위대한 대승보살로 보는 점은 신도들의 현실적인 구제 문제에 대한 항간의 여러 소리에 대해,
“나는 병을 고쳐준다고 하기 전에 마음 깊숙한 곳에 되돌려 놓는 도리를 알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괘념치 말라. <중략> 내가 이미 오래 전에 그 문제를 숙고한 일이 있었으니 ‘부처님 법이 아니다. 능사가 아니다’ 하고 따지기 전에 당장에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 놓고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라고 하셨다.
심준보 교수 : “오늘날 한마음선원이 대도량을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한국 선은 자비가 없다. 대행스님은 철저한 본분 선사임에도 불구하고 법이고 뭐고 당장에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 놓고 봐야 하겠다는 이 정신이 있었던 것이다.
왜곡되고 타락한 선을 오늘날 대승적 정신으로 되살린 분이 한마음선원의 대행 큰스님이다. 이 왜곡된 선을 벗어나 대승적 선을 만들려면 대행 스님의 선이 앞으로 나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제자들이 할 일이 무척 많다. 앞으로 기대를 하겠다.”
시원한 논평에 화답하는 박수
김응철 교수 : “한생각 돌이키는 것으로 해결이 되면 되는 데 그렇게 복잡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겠냐는 일갈은 마음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리라 본다.”
다음은 문진건 교수님의 논평입니다.
문진건 교수 : “ 하나의 심리치료 프로그램은 치유 대상(환자, 내담자, 또는 참여자)에 대한 핵심가정이 있어야 하고 대상을 치유하는 방법들이 순서대로 구성되어 있는 모델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논문에는 치유 대상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없어서 일반대중 모두를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다양한 치유방법들이 특정의 순서와 시간으로 진행된다는 모델이 없이 단지 문화치유명상의 각각의 방법들을 나열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의 프로그램은 치유 효과를 예측할 수 없으며, 그 결과를 검증하고 분석하기가 어렵다.”
문진건 교수 : “여기서 제시된 각 명상법들이 논자가 먼저 밝힌 대행선의 치유 원리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심도 있는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진치유명상은 ... 자신의 사진을 관찰함으로써 주인인 나의 본질을 체득하고 공한 존재임을 깨우치는 관찰명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관찰명상이 주인공 관법의 원리를 반영하고 주인공 관법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평자의 생각은 긍정적이지 않다.
주인공을 관찰한다는 것은 모든 사량분별을 내려놓고 본래의 마음(불성)을 표면으로 드러내어 활용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반면에 일반인들이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인공을 보다 쉽게 관찰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진을 활용한다는 아이디어는 주인공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
문진건 교수 : “또한 사진치유명상은 사념처 수행법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주인공 관법과 사념처 수행은 동일한 수행원리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논자의 생각을 묻고 싶다.
불이를 터득하는 한마음 체득의 원리가 염불치유명상으로 일반인들이 실현가능한지를 묻고 싶다... 염불수행이 한마음을 체득하는 적절한 방법임을 주장하는 것인데,
이러한 염불삼매가 과연 일반인들이 이룰 수 있는 경지인지, 그리고 예비명상, 본명상, 수습명상으로 구성된 염불치유명상에서 참여자들이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이 검증되었는지에 대한 논자의 답변을 듣고 싶다.
...프로그램의 연구개발을 위해 더 정밀한 계획과 검증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김영래 교수 : “어떻게 보면 많은 문제 제기를 포함해서 차분하고 날카로운 논평을 해 주셨다.”
김응철 교수 : ““문화영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나이가 들어도 점점 가치가 빛나고 자기 역할을 더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했다...
소중한 전문성을 가진 문화인들이 세월이 지나가면서 더욱 농익은 그런 삶의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차원에서 자기가 하는 일들을 치유명상으로 연결시켜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치유명상으로 가는 데 있어서 대행스님의 사상도 활용할 가치가 충분히 있으니 공부해봐라 그런 의미가 있다.
... 문화치유명상은 걸음마 단계이고 검증을 해야 되는 단계이다.”
박훈(청년회) : “(문화치유명상을) 공생에는 법고(치유명상), 공심에는 음악(치유명상), 공용에는 걷기(치유명상) 등 이렇게 각자 프로그램으로 제안을 해주셨는데, 좀 억지스러운 느낌이 있다. 원래 있던 것을 여기에 짜깁기 한 느낌이 든다.”
김응철 교수 : “말씀하신 대로 억지로 갖다 끌어 맞춘 면이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연구한 사람이 없지 않나? 누군가는 억지로라도 설명을 하고 그것을 토대로 부족한 면이 있으면 바꾸고, 또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저희들이 이런 공부를 하는 것도 그런 디딤돌을 하나 놓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홍영주(본원 신도) : “오공하고 바라밀의 연계에서 조금 불편했던 부분이 공용과 공식 부분이다. 교수님께서 활용 부분에 집중하시면서 (공식을) 먹는 걸로 하다보니 이런 바라밀과의 연계가 나온 것 같다...
아마 활용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은 했지만, 공식이라는 것이 먹는 것 뿐만 아니고 ‘원식’도 해당된다. 그리고 공생 공심 공체 공용의 공통의 틀을 위한 식의 개념이란 것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규정한 것이 불편해서 여쭤본다.”
편자 주: 공식과 원식에 대한 큰스님 법어
[점수 행을 하면서 생활 속에서 모두 공식한다면 공생으로서 공심이 되고 공체로서 공용을 할 겁니다. 즉 말하자면 공생을 알면 공심을 알고 공심을 알면 공체도 알고 공체를 알면 바로 공용도 알고 공용을 알면 공식을 안다는 거죠.
안이비설신의 자체가 한데 합치면 원식이 됩니다. 이게 공식이죠. 먹는 것만 공식이 아니란 말입니다. 먹는 것만 가지고 공식이라는 게 아니라 모든 걸 닥치는 대로 내가 한데로 흡수할 수 있어야 집어 먹는 게 되겠지요.
체가 없는 거를 만 개를 집어넣으면 어떻고 수만 개를 집어넣으면 어떻겠습니까. 그게 두드러집니까? 그래서 마음에다가 수만 개를 집어넣어도 두드러지지 않고 꺼내도 줄지 않는다고 했던 거죠. 마음이라는 것은 이렇게 무궁무진한 겁니다.]
김응철 교수 : “십바라밀(十波羅蜜)의 십도삼행(十度三行)의 실천 원리들을 잘 살펴보면 삼행(三行)의 실천 원리 속에 이런 부분이 있다 하는 것이다. 오공의 다섯 가지를 원리적으로 설명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논문의 목적에 맞게] 조금 더 실천적으로 삶 속에서 [설명했다.]”
이상호 박사 : “(논문 중에) ‘주인공의 본질은 바로 영원한 생명, 마음, 육신이 하나로 결합되어 일심을 만들고’라고 하셨는데... 대행선은 일심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믿고 지켜보면서 증득하는 것이다... 선종에서도 계합한다고 한다... 일심을 만든다고 말씀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또 ‘불성(佛性)과 자성(自性)이 하나가 되는 일여의 상태로 정의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마치 범아일여 사상처럼 비불교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대행 큰스님께서는 자성본래불이라 하셨고 자성청정심을 말씀하셨다.
오공에 대한 해석을 하셨는데, 오공에 대한 개념 정리는 앞으로도 계속 필요한 부분이다, 연구자마다 조금씩 다른 느낌들도 있고 하는데, 이렇게 해석하신 나름의 근거가 있으신지?"
이상호 박사 : “마지막으로 같은 페이지에 ‘주인공에 대한 자각은 믿음을 넘어서 자신의 내면에 들어 있는 자아의식을 통해 문제 해결의 힘이 있음을 깨우치는 단계로 볼 수 있다.’고 하셨다.
여기서 주인공에 대한 자각을 자아의식을 넘어선 차원으로 보지 않고, 자아의식의 확장, 또는 자아의식의 능력으로 간주하는 느낌이 든다. 주인공에 대한 자각을 자아의식의 한계에 가두는 결과가 되지 않는가? 주인공 관법을 통해 자아의식을 놓고 믿고 맡기는 과정과 배치될 수 있다.
논문 전반적으로 볼 때 대행선 기존의 수행법과 문화명상치유법의 범주가 명확하지 않다. ”
김응철 교수 : “일심을 만든다는 것’은 ‘체득’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데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불성이 자성이다라고 하는 것은 결국 ‘자성은 곧 무자성이고, 무자성은 연기적 존재이고 공하다,’ 하는 것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연기와 공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다면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쓰는 것이 문제가 없다고 본다.
오공이란 표현도 문화명상치유의 사상을 높이기 위해서 대행스님의 사상을 갖다 붙였다. 그렇게 붙여야 문화치유명상을 하는 분들이 더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응철 교수 : 또 질문하신 부분... 사실 긍정심리학이 한동안 유행했다. 또 긍정적인 마인드로 치료가 되겠냐고 비난하는 의견들도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끊임없이 질문과 대답을 통해서 수정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대행선을 직접 실참, 실수하시는 우리 불자님들의 입장에서는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실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런 문제 제기, 아이디어들이 대행선사상을 좀 더 대중화하는데 초석이 될 수 있겠다. 이런 긍정적 평가도 부탁드린다. ”
황수경 교수 : “문화치유명상의 방법에 있어서 어쩌면 조금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불교에서 그리고 큰스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이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과 다르기 때문이다.
부처님이나 큰스님 말씀은 아무리 행복하고, 아무리 불안이나 우울에서 벗어났다 해도 생로병사라는 근본적인 병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 같다.
[명상치유와 수행은] 그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을 했으면 한다."
황수경 교수 : “긍정심리학이 우리 큰스님 가르침과 비슷하다고 하셨는데, 그 점만큼은 제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긍정심리학의 목적은 최상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아무리 우울이 없고 불안하지 않아도 (일반인의) 최상의 상태는 최상의 상태가 아니다.
심준보 교수님 말씀처럼 깨달아, 열반의 상태가 되어야만 최상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정을 벗어나는 긍정은 다 의미가 있지만, 그 목적은 최상의 상태에서도 무아와 자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황수경 교수 : “ 최상의 상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는 것은 23쪽에도 인용하신 대행스님의 자유인이 되는 것... 그러기 위해서 대행 큰스님께서는 자생중생을 제도해야 한다는 아주 좋은 방편을 알려주셨다.
병의 원인을 다섯 가지로 명확하게 정리를 해주시면서 자성중생의 업식은 인과성, 업보성, 영계성, 세균성, 유전성 이렇게 각각 원인이 다르다 (하셨다.)
그래서 어떤 하나의 병이 치유가 된다고 해도 이런 의식이 있는 한, 그 다음 문제, 그 다음 문제가 계속 나온다 하셨다. 그 모든 것, 병 조차 사실은 붙을 바가 없다고 알 때, 진짜 자유인이 될 때 벗어난다고 하셨다...
선행 연구를 많이 인용하셨는데, - 논문과 책, 수행일지 등을 소개함- 필요하시면 이런 책들을 참고하시면서 앞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셨으면 한다.”
김영래 교수 : “새로운 논평을 하나 해 주신 것 같다... 마침 연관이 되는 내용이라 질문 드리고 싶은 게 있다. 교수님께서 긍정심리학을 말씀하시고 그것이 큰스님 가르침과 연관성이 깊다 말씀하셔서 과연 그런가 깊이 생각해 보았다.
심리학은 결국 심리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고 그러기에 정서, 의욕, 욕구, 욕망이 그 대상이 되는 것이고, 철학은 최종적인 근거가 무엇이냐 파고 들어가 이념 같은 것에 도달하는 학문이고, 불교는 깨달음, 각성 등 결국 궁극적인 초월성이다.
이런 것을 명확하게 층차를 말씀하지 않고 비슷하게 동치를 시키니까 이게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점이 있다.
논문의 제목도 ‘대행선사상의 문화치유명상 응용방안’이 아니라 ‘대행선사상을 응용한 문화치유명상’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응철 교수 : “두 분의 가르침이 논문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황수경 교수님 말씀에 공감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열반의 체득인데...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단계별로 근기별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애기를 할 수 있지만, 최종의 목표지점은 열반의 체득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참고해서 이 논문을 수정하는 데 활용하고 반영하도록 하겠다.”
다음 발표는 동국대 고영섭 교수님의 ‘분황 원효의 일심과 묘공 대행의 한마음’에 대한 발표 시간입니다.
좌장은 대행선연구원장 이평래 교수님, 논평은 동국대 박인석교수님, 대행선연구원 이석환박사님이 맡아주시겠습니다.
고영섭 교수 : “ 원효의 일심학이 일심지원과 일심, 일(각)미와 일심, 본각과 진여 등의 구도로 이루어지듯이, 대행선의 가풍도 한마음 주인공과 한마음으로 이루어지는 일원상으로 구체화되며, 한마음 주인공이 일원상의 구심화라면 한마음은 일원상의 원심화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원효의 용어로 바꾸면 우리의 본래 마음인 ‘한마음 주인공’은 ‘일심지원’이고, 본래 마음의 원심화인 중생심인 ‘한마음’은 ‘일심’이라고 할 수 있다. ”
박인석 교수 : “‘한마음 주인공’과 ‘한마음’은 그 사용 범위가 겹치기도 하고 구분되기도 한다. 대행의 불교사상에 대해 문외한인 토론자로서는 이 두 개념을 글쓴 이와 같이 구분해서 파악하는 것이 대행의 불교 사상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는 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이 두 개념의 동이점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시길 청한다.”
이석환 박사 : “논자는 ‘한마음주인공이 본래 마음이라면 한마음은 여기로부터 나온 중생심이다.’라고 하면서 ‘한마음과 한마음 주인공은 제8식과 제9식에 상응한다.’고 제시하셨는데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래장 전공자의 입장에서 보면 일심과 (다른) 중생심은 없다. 일심과 중생심이 다르지 않고, 일심과 일심지원도 같다고 본다.... 한마음과 한마음 주인공을 나눠서 보아야 할지... 여래장 사상의 기본적인 기틀에서 보면 같다고 보아야 더 명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플로어에 계신 분들께서 이 문제에 대해 더 많이 고민과 고려를 더 해보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플로어에 계신 분들과 같이 고민을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영섭 교수 : “토론 광장에서 얘기가 될 것 같아서 그 부분은 (답변을) 비워두겠다.”
이상호 박사 : “자료집 74페이지에 ‘한마음 주인공이 일으키는 한마음’ 이런 표현도 있고, ‘한마음을 중생심이자 우주적 마음’... 이렇게 구분해서 한마음 주인공을 구심으로., 한마음을 원심으로서 중생심.. (이라고 하셨는데) 이런 것은 상당히 곤란하다...
큰스님께서는 그렇게 구분해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에 한마음주인공이 근원이라면 한마음선원이 아니라 한마음주인공선원이 더 적절할 것이다. 굳이 그 관계성을 구분하려고 한다면 차라리 ‘한마음’과 ‘한생각’이 더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꼭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드러내고자 의도를 살릴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큰스님께서 한생각이라는 용어를 한마음 못지않게 자주 사용하셨다. 한생각으로 우주를 떠받든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런 부분으로 다시 한마음요전을 살펴보시기 바란다.... 질문이 아닌 형식으로 말씀드려서 죄송하다.”
고영섭 교수 : “‘앞으로의 과제로 좀 더 고민을 해야 될 부분이다.”
김영래 교수 : “한마음 그리고 주인공은 저희로서는 굉장히 중요한 용어다. 대행스님께서는 우주의 근본도 한마음이요, 태양의 근본도 한마음이고 나의 근본도 한마음이다, 이런 맥락의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런데 달리 말씀하신 것이 있는데, 한마음을 중심으로 잡는 것이 주인공이다 이런 말씀도 하셨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주인공이란 용어를 수행적인 의미가 굉장히 강하다고 본다. 그래서 저희가 마음공부를 할 때는 주로 ‘주인공 너만이 너를 증명할 수 있다.’ 이렇게 한다. 그런 것을 참고를 하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말씀드린다.”
고영섭 교수 : “‘한마음=주인공’이라는 맥락과 ‘한마음+주인공’ 이라는 개념, 이 부분은 좀 더 살펴 보겠다.”
혜선스님 : “87페이지의 내용과 같으면 한마음이 중생심이 되어버리는데, 조금 설명을 부탁드린다.”
혜솔스님 : “발표 중에 아직 완전하게 연구하지 못했다고 하셨기 때문에 혜선스님 질문을 부연 설명드리고 싶다.
저희 스님 가르침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불성의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을... 활용을 넘어 중용이라고 말씀하셨다. 활용이라면 나에게 주어졌을 때, 무엇엔가 필요할 때 쓰는 것이고, 중용은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걸리지 않고 중도의 도리로서 활용을 할 때 중용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한마음을 중생심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오류가 있다. 교수님께서는 한마음을 구심과 원심으로 분리하셨기 때문에, 종체기용 섭용귀체(從體起用 攝用歸體)할 때 종체와 섭용으로 분리하신다면 더 이해가 되겠다.
그리고 한마음을 온갖 작용, 한마음을 발전소라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주인공을 각각의 정부[발전소에 비교하면 변전소 : 편자 주]라고 표현하신 적도 있다. 이 논문에서도 본 것 같다. 그래서 주인공을 구심이라고 표현하시고 한마음을 원심이라고 표현하신다면 종체와 섭용으로 이해하시면 좋겠다...”
[종체기용 섭용귀체(從體起用 攝用歸體) - 종체기용(從體起用)은'근본인 체(體)를 좇아 작용을 일으킨다.'는 뜻이며, 섭용귀체(攝用歸體)는 '작용을 거두어 근본인 체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즉 근본인 체로부터 작용이 펼쳐져, 작용은 다시 근본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_편자 주.]
고영섭 교수 : “대승기신론에서는 일심을 불심이 아니라 중생심이라고 한다... 여래장으로서의 일심은 생멸이 있고, 적멸로서의 일심은 생멸이 끊어진... 기신론은 일심의 다른 의미로 중생심을 쓰고 있다는 논지를 그것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박진영(청년회) : “발표문에서 한마음 주인공을 근원적인 개념으로, 한마음을 한마음 주인공이 나타난 확장된 개념이라고 하신 것으로 이해한다... 큰스님께서는 주인공을 한마음과 다른 어떤 근원으로 말씀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만약) 교수님의 관점처럼 주인공과 한마음으로 나누더라도, 한마음을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측면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영섭 교수 : “요전에 한마음 주인공이라는 용어가 나오기 때문에 원효와 즉(卽)해서 얘기할 때 학술적으로 구분해본 것이다. 학문적 체계라는 점을 고민해주시면 좋겠다.”
박지영(한마음과학원) : “큰스님께서는 한마음을 일심이라고 얘기도 하시지만, 공심이라고 말씀을 항상 하셨다. 공심이라는 차원에서 한마음에 접근하는 것이,
‘원효대사가 말씀하시는 일심이라는 뜻이 공심이라는 것에 포함될 수 있지 않나’ 라는 역접근을 해볼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코멘트를 드린다.”
고영섭 교수 : “아주 좋은 아이디어, 좋은 말씀을 주셔서 감사드린다... 오공에서 말하는 공심과 한마음과의 관계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감사하다.”
혜솔 주지스님 : “오늘 이 인연으로 계속해서 앞으로 대행선연구원 발전에 그리고 향상에 큰 기여를 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이 자리에 함께 해주셨던 신도분들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2018년 겨울의 제 2 회 계절발표회가 원만히 회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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