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일본불교의 한국 진출과 활동 양상 / 김경집(진각대) 2020.02. 4집(99-140) > 논문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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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 자성불(自性佛)을 모시고 있다.
어찌 솟아날 구멍이 없다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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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집 근대 일본불교의 한국 진출과 활동 양상 / 김경집(진각대) 2020.02. 4집(99-140)

김경집(진각대) 2020.02. 4집(99-140)

본문

초록

개항 이후 한국에 진출한 일제는 자신들의 침략의도를 숨기기 위해 일본불교를 앞세웠다. 일제의 지원을 받은 일본불교는 한국 전역에 포교소를 건립하고 그들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지도록 식산흥업殖産興業을 장려하여 가능한 물질적 개발에 힘썼으며, 승속을 불문하고 저명인사에게 일본 시찰을 주선하여 발전된 문명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학교를 설립하여 청년을 계발한다는 방안 등 구체적이고 치밀한 계획을 실행하였다. 이런 일본불교의 계획은 침략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외형적인 성과에 힘입어 한국인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일제의 강점 이후 일본불교의 한국 진출은 더욱 많아져 광복 때까지 모두 26교파에 이르렀다. 이를 교학적으로 분류하면 크게 정토 계열, 밀교 계열, 선종 계열, 법화 계열, 그리고 화엄 계열로 구분할 수 있다. 그들이 건립한 일본불교 포교소는 대략 900개가 넘는다. 지역별 현황을 보면 먼저 경성을 포함한 경기도가 가장 많고, 다음은 부산을 포함한 경남이며, 세 번째 충남, 네 번째는 함북이었다.

이런 분포가 나타나는 것은 먼저 경성을 포함한 경기도와 부산을 포함한 경남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충남을 이어 전남, 전북 그리고 함북에 많은 포교소가 세워진 것은 일본의 미곡정책과 광물에 대한 수요 때문이었다.

일본불교는 처음에 주로 일본인들의 신앙생활을 지도하였다. 한국인들은 반일감정으로 일본불교를 외면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인 가운데 주로 일제와 관련된 사람들이 일본불교 포교소에 다녔다. 그런 까닭에 자연히 한국인 증가는 일본인 신도 증가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불교 각 종파들은 지역의 핵심 사찰을 중심으로 신도회를 조직하여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맞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런 활동은 한국불교에 영향을 주어 지금까지 없었던 신행단체가 설립되어 사회활동으로 이어졌다. 이런 활동은 대부분 식민정책으로 활용되었다.

일제의 불교정책과 일본불교의 활동으로 한국불교의 전통 의례가 점점 변질되었다. 명칭과 의식 순서가 일본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렇게 일본불교와 문화가 담겨진 의례들이 행해지면서 상대적으로 한국불교는 점점 설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Korean ports were formally opened to Japan in 1876, and their first order of business was to introduce Japanese Buddhism, most likely to hide their hostile intentions. Japanese Buddhism, with full support of the Japanese government, established their own propagation centers all over Korea, to such an extent that the Koreans let their guard down. The Japanese Buddhists implemented detailed plans, including establishing many schools to educate the youth. These activities appealed to Koreans and appeared to be positive and beneficial. However, after the Japanese occupation, Japanese Buddhism spread throughout Korea and eventually resulted in 26 Japanese Buddhist orders. They also built more than 900 Buddhist temples. The largest number of Japanese Buddhist temples were established in Seoul and Gyeonggi province, followed by Busan and Gyeongnam province, and, lastly, Chungnam province.

This distribution was due to the fact that Gyeonggi province included Gyeongseong (present Seoul) and Gyeongnam province included Busan, both of which were politically important regions. Many Japanese Buddhist propagation centers were also established in Chungnam, Jeonnam, Jeonbuk, and Hambuk provinces due to Japanese demand for rice and minerals. Japanese Buddhism focused mainly on the religious life of the Japanese, but most Koreans rejected it due to anti-Japanese sentiment. Among Koreans, Japanese people mainly attended Japanese Buddhist missionary school. Therefore, the increase in Koreans was inevitably small compared to the increase in Japanese Shinto.

Japanese Buddhist orders organized their own associations at their respective temples and carried out activities in line with Japanese colonial policy. Such activities influenced Korean Buddhism which eventually led to the establishment of a new Korean Buddhist order that previously had not existed. This eventually expanded into social activities to promote Japanese colonial policies. Japanese Buddhist rituals and activities gradually changed traditional Korean Buddhist rituals whose names and the order in which they are performed were changed to the Japanese style. As a result, Korean Buddhism gradually lost its identity and dominance.


목차

Ⅰ. 서언
Ⅱ. 일본불교의 한국 진출과 포교소 건립
1. 개항 초 일본불교의 진출 전략
2. 일본불교의 포교소 건립 현황
Ⅲ. 일본불교의 종파별 교세와 활동 양상
1. 일본불교의 종파별 교세 현황
2. 일본불교의 활동 양상과 영향
Ⅳ. 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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